조선 일보 2014.07.22 연극<꿈을 삼켰을 때>
[연극 리뷰] 몸으로 이야기하는 꿈의 대화
유석재 기자 서호준 인턴기자(서울대 사회학과 졸)
입력 : 2014.07.22 03:03
꿈을 삼켰을 때
한 시간 남짓한 공연 시간 내내 주인공은 여행 가방을 들고 있다.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아침 그는 몽유병에 걸린 듯 그걸 지니고 어디론가 가려 한다. '떠남'이 곧 '꿈'인 셈. 그러나 무대 위 어항 속의 금붕어처럼 그는 끝내 자신이 사는 도시를 벗어나지 못한다. 금붕어의 이름은 그와 같은 '파블로'다.
연극 '꿈을 삼켰을 때' 〈사진〉는 스페인 말라가에 있는 극단 무 떼아뜨로(Mu Theatro)의 내한 공연이다. '신기루' '원더풀 초밥' 등의 극본을 쓰다 스페인으로 건너갔던 강은경이 연출을 맡은 이 작품은 대사 한마디 없는 신체연극이다. 배우 세 명은 분주히 몸을 움직이며 플라멩코와 마임, 비트박스와 카혼 연주를 통해 감정을 드러낸다. 농구를 하는 장면은 묘기에 가까운 현대 무용으로 표현되고, 연인이 바닥을 쿵쿵 밟으며 플라멩코를 추면 주인공은 귀를 틀어막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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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/씨어터 송 제공
간간이 비치는 자막이 내러티브 전개를 돕는다. "하루는 기쁠 수도, 슬플 수도,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. 꿈을 만나고, 헤어지고, 꿈을 바꿉니다." 생일을 맞은 파블로는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여자 친구와 헤어진다. 친한 친구 한 명은 배를 타고 함께 떠나자고 하지만 그저 망연히 그를 보낼 뿐이다. 요양원에 있는 치매 걸린 어머니는 그를 알아보고 손을 꼭 잡는다.
마지막 장면, 배우들은 어항 곁에 누워 헤엄치듯 팔다리를 젓는다. 무대는 서서히 암전된다. 마음속에 간직한 꿈을 찾아 나서기에는 발을 딛고 있는 이 환경이 너무나 각박한데, 오늘도 끝내 여행 가방 하나 달랑 들고 길을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. 그것은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 끝에 사는 사람들도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. 시종 분주하고 익살스러우면서도 애잔하고 처연(凄然)한 여운이 오래 남는다. 극장이 서초동 대법원 근처 빌딩 지하라는 점도 이채롭다.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했던 연극을 만난 셈이다.
▷8월 3일까지 소극장 씨어터 송, 070-8843-0088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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